꿈꾸는 직업을 찾기 [정철상의 취업백서](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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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직업을 찾기 [정철상의 취업백서](22)
  • 뉴스앤잡
  • 승인 2025.06.25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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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와 적성을 찾기 위한 방법으로는 정해진 틀을 뛰어넘어 보기다.

우리는 흔히 ‘남자는 이런 일을 해야 해, 여자는 저런 일을 해야 해, 20대는 이런 일을 해야 해, 50대는 저런 일을 해야 해, 인문계열은 이런 일을 해야 해, 이공계열은 저런 일을 해야 해’라는 틀에 정해진 사고를 하곤 한다.
그런데 내가 상담했던 한 학생은 전혀 엉뚱한 경험을 통해서 자신의 적성을 찾게 된 사례가 있다. 이 학생은 군 제대 후 복학하기 전에 다양한 경험을 해보자는 다짐으로 여러 가지 하고 싶은 경험도 시도했다. 또 한편으로는 20대 남자라면 절대 하지 않을 것 같은 경험 리스트도 작성했다. 그중에는 피부미용사도 있었는데 왠지 도전해보고 싶었다고 한다.
피부미용사가 되기 위해서는 자격증시험을 봐야 하는데 교육받지 않고는 직업을 갖기 힘든 구조였다. 문제는 수강료가 200만 원이나 되는 거금이라는 점이었다. 망설여졌지만 200만 원어치의 화장품 세트를 실습용으로 받는다고 해서 그 정도라면 화장품이라도 건질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교육과정에 등록했다.
교육생들은 다들 현직 미용실 원장님이거나 미용실을 차리려는 경력직이 대부분이었다. 그것도 전원 여성이었다. 게다가 20대는 그가 거의 유일하다시피해서 교육받는 동안 동기생으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렇게 피부미용사 자격증을 취득한 다음, 실습을 위해 평소에 친하게 지내지도 않던 친누나에게 접근해서 피부미용과 피부마사지를 해주겠다고 했다. 못 미더운 듯하던 누나가 2시간 정도의 피부미용을 받고는 평소에 주지도 않던 용돈까지 주면서 다음 주에도 한 번 더 해달라고 했다. 그렇게 어머니에게도 실습해보고, 여자친구에게도 실습하며 실력을 가다듬었다.
그렇게 방학을 보내고 복학을 했는데 같이 교육을 받았던 원장님들이 자신의 피부미용실로 아르바이트 하러 올 생각은 없느냐고 전화가 오더란다. 시급은 최저시급으로 낮았지만 팁이 있어서 나쁘지 않을 거라며 유혹했다. 그렇게 학교를 다니면서 주 2~3일 정도 피부미용실에서 알바를 했다. 실습도 하며 실력도 키울 수 있고 돈도 벌 수 있으니 1석 2조라는 생각으로 열심히 근무했다.
피부미용실의 손님들 80% 이상이 여성이었는데 그중에는 50~60대 여성들이 많았다. 그런데 이 젊은 20대 청년이 피부미용실에서 일한 이후 손님들이 더 자주 방문하고 새로운 고객들도 더 늘어나 원장님이 좋아했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손님들이 팁을 줬는데 알바 급여는 한 달에 50만~60만 원 정도밖에 안 되었지만 팁만으로도 200만~300만 원 넘게 받을 때도 있었다. 게다가 원장님까지 시급을 더 올려줄 테니 근무시간을 더 늘리자는 제안까지 받았다.

그런 그가 나를 찾아왔다. 요즘에는 대학을 졸업해도 취업이 안 된다는데 차라리 대학을 그만두고 피부미용실에서 풀타임으로 일하면 500만~600만 원 정도는 벌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나 역시 그 정도면 나쁘지 않겠다 싶었지만 현재 전공 만족도가 궁금해 물었다. 그는 독일어를 전공했는데 전공 공부도 나름 재미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이야기가달라질 수 있다.
나는 최근의 안티에이징 추세를 이야기하며 젊어지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은 만큼 앞으로도 꾸준하게 피부미용에 대한 수요가 늘어날 것이라고 말해줬다. 그러면서 유럽의 최대 강대국이 어느 나라인지 그에게 물었다. 물론 답은 독일이었다. 만일 그러하다면 대학을 다니는 동안 아르바이트를 지금처럼 유지하고 졸업 후에 독일 쪽에서 피부미용관련 일을 하거나, 경험을 쌓거나, 학업을 이어나가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했다. 그렇게 한국으로 돌아와 5~6년 정도 일해서 모은 자본으로 자기만의 샵을 운영하면 대박이 나지 않겠느냐고 말해줬다. 그 학생은 앞으로 열심히 학교를 다니면서 피부미용사로서의 역량도 키워보겠다고 다짐했다.
우리가 하고 싶은 분야의 흥미를 통해 직업을 찾는 방법도 있지만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분야에서 우리의 적성을 찾을 수도 있다. 그런 측면에서 이 청년처럼 조금 더 열린 마음으로 조금 더 다양한 관점으로 접근해볼 필요가 있다.


흥미와 적성을 찾기 위한 방법으로는 온몸으로 도전해나가기다.

한 여자 아이가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누구에게도 지고 싶어 하지 않는 불같은 성격이었다. 남자 아이들에게도 지고 싶지 않아 주먹질을 하기도 해서 어릴 때부터 말썽꾼으로 불렸다. 몸을 더 강하게 단련하기 위해 유도를 배웠는데 열심히 하다 보니 학교대표 유도선수로 대회에 출전할 정도의 실력이 되었다. 그러다 보니 여자들을 이기는 것은 시시해졌다. 남자들과도 대련을 시켜달라며 졸라 대련도 해봤지만 남자를 이기기란 쉽지 않았다.
그렇게 유도에 대한 열정이 시들해질 무렵 책을 읽게 되었는데 몸으로만 살게 아니라 머리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에 학업에 뜻을 세우고 공부에 도전했다. 기왕이면 좋은 대학에 가보자는 욕심으로 열심히 공부해서 목표로 한 대학에 입학했다.
단지 좋은 대학을 졸업하는 것으로 그칠 것이 아니라 ‘앞으로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바람으로 국제구호단체에 취업하기로 마음먹었다. 학교생활을 하면서 열심히 취업 준비를 한 덕분에 국제구호단체에 취업할 수 있었다.
해외 본사에서 근무할 수 있게 되어 무척 기뻤지만 근무를 할수록 내근직인지라 어려운 사람들에게 직접적으로 도움을 주는 일을 하고 있지 못하다는 자괴감이 들었다. 테레사 수녀님처럼 가장 가난한 사람들곁으로 먼저 다가가 보자는 마음으로 방글라데시를 찾았다. 일단 그 나라 분위기와 국민 분위기를 이해하는 시장조사 차원에서 2박 3일 일정으로 찾아간 여행이었다.
여러 안내 책자에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돈을 나눠주는 그런 행동은 하지 말라고 경고했지만 그녀는 공항을 내리자마자 불쌍한 사람들이 내미는 손을 차마 거절할 수 없었다. 그래서 손 내미는 족족 수중에 있던 돈을 건네줬다. 그랬더니 사람들이 하나둘 몰리더니 나중에는 사람들이 구름떼처럼 몰려 그녀를 에워쌓다. 그녀는 덜컥 주저앉아 버렸다. 놀란 공항경비원이 무슨 일인지 확인 후 그녀를 부축해 택시를 태워 숙박지로 보내줬다.
그녀는 호텔 밖을 벗어나지도 못하고 이틀 내내 울었다. 말로만 가난한 사람을 돕겠다고 생각했지 정작 가난한 사람들 앞에서 주저앉아 버리는 나약한 자신의 모습에 크게 실망했다. 그렇게 이틀을 눈물만 흘리다 이대로 포기할 수 없다는 생각에 사표를 던지고 방글라데시로 이사한 뒤 기업까지 설립했다. 가난한 방글라데시 사람들에게 돈 몇 푼을 건네는 일보다 그들에게 더 큰 자부심을 불어넣어야겠다는 결심을 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그렇게 방글라데시에서 생산되는 가죽으로 피혁제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회사 이름도 존경하는 테레사 수녀님 칭호에 맞춰 마더하우스라 이름 지었다. 이상은 『26살, 도전의 증거』를 쓴 마더하우스의 창업자 야마구치 에리코의 인생도전 스토리였다,
나는 그녀의 책을 읽으며 전율을 느꼈다. 처음 책 몇 장을 넘길 때만 해도 싸우길 좋아하는 불량소녀의 자서전 정도로만 생각했다. 그렇지만 읽어갈수록 그녀가 얼마나 치열하게 자신의 한계를 향해 도전해나갔는지를 느낄 수 있어 깊은 존경심이 느껴졌다. 젊음의 가장 큰 특권 중에 하나가 이런 과감한 도전이 아닐까 싶다 .
흥미와 적성에 맞는 일은 저절로 우리 자신에게 떨어지지 않는다. 그러니 내 꿈에 맞는 일을 찾기 위해 조금 더 과감하게 도전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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