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무님! 다른 나라로 가서 1년간 근무하게 생겼습니다”라고 인사말을 들었을 때가 엊그제 갔다. 취업하자말자 쉽지 않은 제3국의 공장 설립요원으로 파견된다는 것이었다. 신입사원이 뭘 안다고? 3년전의 일이다.
주인공인 허태현 주임(가명)은 글로벌청년사업가(GYBM)양성과정 베트남반 7기로 2017년 8월부터 1년간 연수를 마치고 다음 해 8월에 지금의 회사인 T&K(가칭)로 입사했다.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명품 브랜드 생활용품을 주문자상표부착방식(O.E.M)으로 제조하여 글로벌 기업에 공급하는 회사다. 베트남 하노이, 호치민 등 몇 군데 공장을 가동하고 있으며 동남아 다른 국가에도 사업장이 있다.
3국에서 1년간 무사히 근무를 하고 작년 말에 지금의 베트남 호치민의 공장으로 돌아오자 회사는 인사업무 실무 총괄을 맡겼다. 그런데, 불과 3개월여가 지난 2020년 2월부터 코로나19라는 듣도보도 못한 상황에서 대대적인 인력 조정 작업이라는 듣도보도 못한 작업을 해내야 하는 상황에 마주하게 되었다. 그것도 베트남 노동법 기준이다. 오래 전부터 베트남으로 와서 근무하고 있던 한국인 상사(上司)조차 힌트 한 마디도 줄 수 없는 업무였다.
결과적으로 한국의 대기업에서 30,40년을 근무해도 한 번 접하기 어려운 일을 두 번이나 경험하는 것이다. 통화하는 내내 그 긴장감이 묻어났다.
위기의 내용
금년 2월이 지나며 미국, 유럽의 도시들과 관광지 등이 봉쇄되며 현지 시장의 판매가 급격히 줄어드는 소식이 속속 전해졌다. 기존의 주문이 취소되고 거래하던 회사의 주문도 끊겼다. 이미 수출, 공급한 제품의 대금 입금도 지연되었다. 회사의 자금사정도 어려울 것이 뻔해졌다. 점차 시간이 지나며 세계적 전염병인 팬데믹(PANDEMIC) 수준으로 심각해지며 마켓 정상화는 예측조차 할 수 없었던 것은 우리도 익히 아는 바다. 머뭇거리다가는 자칫 회사의 문도 닫을 수 있다는 위기감이 팽팽하게 돌았다. 당연히 인력조정이라는 이슈가 수면 위에 올라왔다. 좋은 말로 ‘조정’이지 회사는 숙련된 인원의 감축이고, 당사자에게는 ‘해고’가 되며 생계라는 민감한 사안이다. 대상자는 무려 18,000명 규모의 직원이다. 물론 한국인 관리자도 모두 대상이 되었다.
의사결정의 핵심 요소(Critical Point)
세 가지를 고려해야 했다. 첫째는 퇴사와 무급 휴직의 두 가지 트랙이다. 회복되면 공장을 정상화시켜야 하는 것과 직원 개개인의 숙련도를 봐야 한다. 둘째는 회복가능성과 시기다. 브랜드를 가진 주문자(바이어)의 제품 특성에 따라 그동안 운영한 생산라인별 인원도 고려해야만 했다. 셋째는 베트남의 노동법과 공장별로 차이가 미묘한 노동조합이 가장 신경이 쓰이는 부분이었다. 그리고, 그 와중에도 직원들의 동요를 최소화하여 일부 물량의 라인을 돌리며 생산성은 차질이 없어야 했다
그러기에 신속하게 정책을 결정하고 집행하며 직원들에게 믿음을 잃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기약은 없지만 정상으로 돌아갈 때를 대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맨 먼저 노동법을 정리하여 한국인 경영진과 같이 이해하며, 각 공장별 현지 인사업무 담당자들과는 문제의 심각성을 공유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 나갔다.
그렇게 단계별로 조정하고나니 9,000명 수준이 되었다. 무려 절반을 줄인 것이다. 다행히 9월이 되며 조금씩 주문이 늘어나며 정상 가동으로 가며 다시 인원을 불러들이며 생산성도 이전수준으로 회복되어가고 있다.
이런 혹독한 업무를 그나마 무난히 해낸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제3국의 공장 설립에 참여하며 생산, 자금, 회계, 통관, 인력업무 등의 실무를 맡았던 경험이 기초가 되었다. 어려운 고난도의 업무 경험이 다음에 닥치는 위기를 헤쳐 나가는 힘이 된 것이다.
소감과 후배들에 대한 부탁
본인의 소감을 물었더니 한술 더 떴다. “신입사원이 제3국에서 신규 공장 설립업무를 하다보니 회사의 모든 업무를 커버해야 하는 고난도 업무의 행운(?)이 있었습니다. 전대미문(前代未聞)의 코로나19로 인해 회사 폐업까지도 될지 모르는 위기와 인력 감축이라는 절대적 상황이라는 또다른 행운(?)을 만난 것입니다. 정말 돈 주고도 하지 못할 경험을 3년 사이에 두번이나 하였습니다.” 행운이라는 역설적 표현에서 비장함이 느껴졌다.
“그리고, 인사관리를 담당 현지인 매니저들이 잘 이해하고 따라준 것이 제일 고마웠습니다. K-MOVE와 GYBM프로그램, 무엇보다 김우중 회장님 덕분에 공부한 현지어 실력 덕을 톡톡히 보았다고 생각합니다. 후배들도 베트남 언어만 아니라 베트남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는 교육을 많이 시켜주면 좋겠습니다”고 했다.
한국에 취직했으면 시키는 것만 겨우 해내고 조금만 힘들면 그냥 회사를 떠나며 워라밸만 찾고 있을 것이 뻔하다. 일의 중요도를 따져 경영진의 의사결정에 중요한 정보와 실무판단을 보고하고, 때로는 현장에서 의사결정을 직접하는 매니저의 경험은 글로벌사업가가 되겠다는 꿈에 다가가는 데 소중한 자산이 될 것이다.
글을 마치며 본인이 써냈던 3년전의 교육연수과정 지원서를 꺼내 보았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라도 해야 한다. 더 높은 꿈을 향해 마땅히 고생을 감내하겠습니다.’ 자신과 주변에 약속을 지킨 믿음이라는 선물이 하나 더 주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