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장 가동 시간인 이른 아침시간인 7시50분경에 생산라인의 미얀마(MYANMAR) 반장이 보고를 한다. “쌔야! 완성된 제품의 수량이 맞질 않습니다” (쌔야:미얀마 말로 ‘선생님’이다)
오늘은 주인공인 ‘김명수 팀장(가명:부경대 수산생명의학과 졸업)’이 근무하는 공장에서 받은 첫 오더(order)제품을 출고하는 날이었다. 하루 전날까지도 부산하게 준비하며 작업을 완료하였다. 수량도 만 개수준이다. 12월의 날씨라 비교적 선선한 아침이라 여유도 부리고 있었다.
그러나, 보고받는 순간에 ‘이게 무슨?’ 머리가 텅 비며 초긴장 상태가 되었다. 이젠 날씨도 후덥지끈하게 느껴졌다.
첫 취업한 직장의 첫 출고 날은 이렇게 시작이 되었다. 대한민국 청년의 글로벌성장통(成長痛)이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인 김팀장은 대우가 만들어 준 ‘글로벌청년사업가양성과정(GYBM)’에서 1년간 현지 연수를 하고 2년 전인 2017년 5월에 ‘가방’을 생산하여 글로벌시장에 공급하는 ‘T사(가칭)’의 이 공장에 취업을 하였다.
공장은 미얀마 양곤(YANGON)에서도 북쪽으로 2시간거리 바고(BAGO)의 외곽공단지역에있다. 말이 공단이지 전기를 포함한 인프라가 형편없다. 하루에도 두세번씩 정전이 되어 발전설비도 갖춰야 하는 곳이다. 한창 공장이 지어질 때 입사하였다. 취업 당시에는 꿈에도 생각지 못한 제품이다. 세계 최고급 브랜드의 가방을 O.E.M(주문자상표부착방식)으로 제작하는 곳이다. 한국에 있을 때나 해외여행 때도 브랜드의 명성과 가격으로 곁에 가보지도 못한 제품들을 만드는 곳이다.
본사에서 부임하신 법인대표를 보좌하며 ‘부공장장’의 직함을 받았다. 입사와 동시에 부하가 500명이다. 한국에 있었으면 ‘헐~’하고 도망갔을 뻔한 상황이다.
공장 설립이 진행되며 각종 생산라인과 제반 시스템이 하나 둘 설치가 된다. 그러는 동안 500여명의 직원을 선발하고 제품제작과 관련한 기능교육도 시켜야 했다. 그런 준비들로 정신없이 시간이 지나갔다. 본인도 가방이라는 것에 대해 잘 알지도 못했다. 다행히 법인대표께서 현지인들에게 기술, 기능에 대해 체계적으로 교육시킬 때 그 틈에 끼여 공부를 하였다. 촘촘하게 만들어진 가방제작 작업지시서, 자재관리, 제품취급 기준 등은 세계적인 명품에 걸맞는 수준이었다.
그런 과정을 통해 받은 첫 오더를 만드느라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고 첫 출고를 날에 이런 보고를 해 왔다. 중간급의 반장들에게 하나하나 따져 물었지만 답이 답답했다.
그런데 갑자기 ‘아차’하는 생각이 들었다.
현지인 중간 리더들에게 관리에 대해 제대로 교육을 시킨 것도 없었다. 기능직 수준의 제품교육만 주력을 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것을 따질 시간이 아니었다. 당장 출고를 차질없이 하는 것이 급선무다. 샘플검사만으로 되는 일이 더더구나 아니었다. 전수(全數) 조사를 해야 완성품, 재공품, 남은 자재 등이 정리가 되는 것이었다. 마음이 급하니 제대로 되지도 않는다.
하나하나를 세면서 품질 점검도 병행한다. 생산 진행중인 재공품 점검과 남은 자재들 수량과 상태도 확인을 해야 한다.
머리속으로는 ‘1개당 최소한 30초, 10,000개면 5,000분, 100시간, 1일 8시간 기준으로 12.5인시(人時, MAN/HOUR)’로 계산이 된다. 그런데, 현지 기능직들의 숙련도가 문제다. 실제로 시켜보니 더디고 답답하기만 하다.
그래서, 직접 몇 개를 시범으로 보여 보았다. 스스로도 익숙지 않은 일이라 시간도 걸리고 힘들었다. 그러나 몇 개 하다 보니 속도가 붙기 시작을 했고 익숙해지는 데 그렇게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현지인 관리자들에게 같이 따라하게 해 보았다. 다행히 능숙하지는 않지만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그래서 본인이 한국기술자와 함께 진두지휘를 하고 현지인들과 같이 쉴 틈없이 해 나가니 2시간 정도에 마무리가 되었다.
말 그대로의 ‘노가다 수준’으로 대응했지만 눈부신 성과였다. 현지인 기능직, 반장들도 모두 스스로 놀라며 흡족해 한다.
그렇게 마무리 되었다.
짧은 시간에 많은 것을 배웠다. 솔선수범과 현지인 교육, 그리고 현지어 구사의 교훈이다.
첫째는, 내가 먼저 시범을 보이고 같이 해야 한다는 것이다. 시작과 끝에는 반드시 한국인 관리자가 눈으로, 손으로 점검하여야 한다. 그들을 믿고 못 믿는 문제가 아니다. 보고서만 보며 머리로만 씨름했다면 답이 없었을 것이다.
둘째는, 현지인 관리자들도 구체적으로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인들이라면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도 맡겨 두면 어느 정도는 해내겠지만, 여기는 그러지 않을 것이다는 전제를 가지고 생각을 해야 했다.
마지막 세번째는, 현지어 공부와 숙달의 중요성이다. 입사전 1년동안 부대끼며 배운 덕분에 위기를 헤쳐 나올 수 있었다. 띄엄띄엄 소통을 했다고 생각해 보자. 마음만 급하고 일이 제대로 되었겠는가? 50대 연세의 선배로 기술자이자 법인대표께서도 미얀마어 구사에 놀라워 했다.
한 가지 다행인 것은 미얀마인들의 순박함과 착실함이다. 가르치면 잘 따라 온다. 최근의 한류도 한 몫을 해서 우리 회사에 근무한다는 것이 자랑거리도 된다고 한다.
이렇게 김팀장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필자의 경험 하나가 생각이 났다. 15년전의 일이었다. 아동용 섬유패션업체 중소기업에서 전무직함으로 일할 때이다. 창고의 이전으로 보관 물량 전체를 트럭으로 옮기는 일이 있었다. 30여명의 전직원이 상차, 하차(上車下車)에 투입되어도 1주일이 필요한 작업 분량이었다. 정작 직원들이 고만고만하게 일을 하니 한 나절이 지나도 진도는 지지부진했다. 판단해 보니 보름도 모자랄 판이었다. 그래서 앞뒤 재지않고 나부터 웃통을 벗었다. 먼저 제품박스를 어깨에 올리고 앞에서 독려하고 뒤에서 격려하며 뛰어 보았다. 4일만에 끝을 보았다.
글로벌 성장통 이야기의 주인공도 고개를 끄덕거리며 동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