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소개서에 이어 면접까지 챗GPT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대한민국은 특이하게 취업 분야와 관련, 자기소개서 시장이 활성화돼 있다. 비즈폼이나 예스폼 등 문서 서식 사이트가 다른 나라보다 유독 발달했고, 자기소개서 예시나 면접 족보 등이 유료로 판매되기도 한다. 대학교 취업센터, 일자리센터에 취업 컨설턴트가 배치되어 자기소개서 작성을 도와주거나 면접 코칭을 통해 취업 과정을 지원한다.
이와 관련, 최근 채용 플랫폼업계가 챗GPT 도입에 속도를 내는 것은 주목할 만한 현상이다. 사람인, 인크루트, 잡코리아, 원티드랩, 뤼튼 등에서 최근 자기소개서 작성, 면접 질문 등에 챗GPT를 적극 활용하면서 변별력 문제가 새로운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이밖에도 많은 기업들이 챗GPT를 활용한 자기소개서 코칭 서비스와 함께 구직자 검증 서비스를 출시하기 위해 열을 올리고 있다.
국내 토종 스타트업 뤼튼테크놀로지스가 운영하는 AI 콘텐츠 생성 플랫폼 뤼튼은 완성도 높은 한국어 지원을 무기로 10만 명이 넘는 이용자를 끌어모았다. 뤼튼의 장점은 무엇보다 특화된 서비스다.
이용자가 작성하려는 글의 종류에 맞춰 글을 작성해준다. 서비스 대상은 자기소개서뿐 아니라, 보도자료, 유튜브 시나리오, 심지어 SNS광고 문구까지 다양하다.
사람인은 자기소개서 작성부터 표절 여부까지 코칭해주는 ‘AI 자기소개서 코칭’ 서비스를 선보였다. 챗GPT를 기반으로 만든 이 서비스는 자기소개서 문항과 지원 직무를 기입한 뒤 그에 맞는 경험과 이력을 키워드로 넣으면 AI가 문장 초안을 작성해준다. 생성된 자기소개서 내용은 문단 바꾸기, 소제목 변경 등의 편집 기능을 통해 개인화된 내용으로 수정 가능하다. 아울러 사람인 자기소개서 데이터를 기반으로 표절 검사를 거쳐 그 결과를 보여준다. 이를 기존 ‘AI면접 코칭’ 기능과 연동해 사용할 수도 있다. 자기소개서 결과물의 맞춤법 확인과 문장 교정, 오탈자 점검 등을 거친 뒤 면접 예상 질문을 뽑아 미리 답변까지 작성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이미 자기소개서를 작성한 경력자도 사람인에 파일로 등록하면 텍스트를 추출해 같은 기능을 이용할 수 있다.
인크루트는 챗GPT 기반 자기소개서 서비스인 ‘잘쓸랩’을 정식 출시했다. 잘쓸랩은 ‘자기소개서 잘 쓰는 법을 개발하는 연구소(lab)’라는 뜻이다. 서비스를 기획할 당시의 TF(태스크포스)팀 이름이 정식서비스명으로 정해졌다. 인크루트 홈페이지의 잘쓸랩 카테고리에서 자기소개서 연습장을 누르면 ‘새 자기소개서 작성’과 ‘채용 일정 확인’이 나온다. 여기서 ‘새 자기소개서 작성’을 누르면 채용을 원하는 기업들이 마감이 임박한 순서대로 노출된다. 원하는 직무나 회사를 검색해볼 수도 있다. ‘채용 일정 확인’을 누르면 캘린더 형식으로 확인할 수도 있다. 그다음 원하는 기업을 선택하고 ‘자기소개서 쓰기’를 누르면 본격적으로 자기소개서를 작성할 수 있다. 이 서비스는 챗GPT를 기반으로 자기소개서 예문을 뽑아주는 게 특징이다. 예문은 사용자 이력 정보와 기업별 자기소개서 문항을 조합해 자동 구성된다. 기업별 자기소개서 문항 확인, 작성 팁, 합격 자기소개서 샘플열람, 문항별 예문 제시, 맞춤법 검사까지 모든 것이 한 페이지에서 가능하다. 구직자들이 자기소개서를 쓰기 위해 여러 개의 창을 띄워놓고 왔다 갔다 하는 불편함을 덜어주기 위한 시도다.
이 밖에 채용 전형 강화를 원하는 기업에 지원자 검증을 위한 ‘메타검사’도 실시하고 있다. 2022년 11월에 정식 출시한 메타검사는 지원자의 다차원 지능을 진단할 수 있는 문제 해결 능력 게임(PSG), 기업별 인재상과 핵심 가치 등에 맞게 진단 항목을 최적화하는 ‘AI PnA(Personality and Adaptability)’로 구성돼 있다. 채용 검증 도구에 게임적 요소를 접목해 지원자의 지능과 역량을 검증하는 데 활용하는 것이다.
잡코리아는 AI 업체 무하유와 손잡고 기업 회원이 이용할 수 있는 ‘자기소개서 AI 분석’ 서비스를 선보였다. 기업 회원이 구직자의 자기소개서를 검토할 때 AI 분석을 통해 표절률과 표절 문장을 알려주는 서비스다.
원티드랩은 챗GPT를 활용한 ‘AI 면접 코칭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AI가 예상 면접 질문을 제시하고 사용자가 답변을 입력하면 답변상의 오류를 찾아 보완 방향을 제시해준다. 구직자가 AI 코치를 통해 면접 과외를 받는 것이다. 피드백에 따라 답변을 수정하는 과정을 거쳐 구직자는 모의 면접을 반복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원티드랩이 운영하는 ‘원티드 채용공고’ 링크를 입력하고 ‘채용공고 분석하기’ 버튼을 누르면 실시간으로 예상 면접 질문이 나온다. 주요 업무와 자격 요건에 대한 질문과 커뮤니케이션 역량, 리더십 등 소프트 스킬에 대한 질문도 제공된다. 면접 답변에 대한 피드백은 ‘답변 제출하기’를 누르면 바로 확인할 수 있다. 답변상 오류를 찾아 주는 것은 물론 구체적 보완 가이드도 제시된다.
이처럼 업계가 잇따라 챗GPT 활용에 나서는 것은 AI 기술이 구직 활동 시간을 줄이고 합격 가능성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구인 기업 입장에서도 수시채용이 활성화됨에 따라 늘어난 인사 담당자의 업무 강도를 낮출 수 있다는 평가다.
이데일리가 인크루트에 의뢰해 인사 담당자 351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78.3%가 ‘최근 챗GPT의 등장으로 기업의 채용에 많은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답했다. 이력서나 자기소개서, 에세이뿐 아니라 면접까지 챗GPT의 영향을 받을 수 있는 만큼 회사에 적합한 인재를 골라내는 방법도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챗GPT가 서류 전형이나 면접 등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는 긍정과 부정이 명확히 나뉘었다. 응답자 중 49.8%는 ‘긍정적’(매우 긍정 10.5%, 약간 긍정 39.3%)이라고 답했으며 50.2%는 ‘부정적’(매우 부정적 6.6%, 약간 부정적 43.6%)이라고 답했다. ‘긍정적’이라고 답한 이유로는 ‘지원자가 부각시키려는 포인트를 파악하기 쉽다’(47.3%)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이어 ‘서류 전형에 대한 지원자의 부담을 덜어줘 지원율이 상승하는 효과가 기대된다’(37%), ‘일목요연하고 가독성 있게 정리된 서류가 많아질 것이다’(37%), ‘합격 자기소개서 등 족보에서 벗어나 독창적인 자기소개서가 더 많이 나올 것이다’(12.5%) 등의 답변이 나왔다. 반면 부정적으로 보는 사유로는 ‘서류 전형의 변별력이 떨어진다’(62.5%)는 의견이 가장 많았다. 이어 ‘지원자의 개성·특징을 파악하기 힘들어질 것이다’(60.9%), ‘지원자가 챗GPT만 믿고 서류 검수와 검열을 하지 않을 것 같다’(33.2%), ‘자기소개서를 AI로 판별하는 프로그램을 도입하는 등 비용이 추가될 것이다’(18.5%) 등의 의견이
뒤를 이었다(복수 응답 허용).
챗GPT로 자기소개서를 작성하는 데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인사 담당자들은 다만 아직 적극적인 대응에는 나서지 않는 것으로 조사됐다. ‘AI 자기소개서나 면접 코칭 서비스 같은 챗GPT에 대응하기 위한 방안을 세우고 있느냐’는 질문에 65.8%가 ‘특별한 방안을 마련할 계획은 없다’고 답했다. 이어 ‘방안을 마련 중이다’(24.8%), ‘방안을 마련해 도입하기 위해 준비 중이다’(8%), ‘대응 방안을 도입했다’(1.4%) 순으로 답했다. ‘향후 특정 전형을 강화하거나 새로운 전형을 추가할 계획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절반에 가까운 49.3%가 ‘없다’고 답했다. 일단 기존 전형을 유지하면서 자기소개서 검증 시스템만 추가 마련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은 셈이다. 면접, 인・적성 검사 등 다른 전형을 강화하겠다는 응답은 28.2%, 아예 새로운 전형을 추가하겠다는 응답은 22.5%로 집계됐다.
기업의 채용 문화도 달라지고 있다. 요즘 인사 담당자는 서류 전형은 AI에 맡겨놓고 정시 퇴근한다. 지원자들의 자기소개서뿐만 아니라 50억 건의 빅데이터와도 비교 검사해서 인터넷에 떠도는 합격 자기소개서를 표절한 자기소개서, 상투적인 자기소개서, 성의 없는 자기소개서를 걸러내고 독창적인 인재를 찾아낸다. 표절 검사 솔루션 카피킬러(hr.copykiller.com)는 단순한 스펙 비교에서 벗어나 지원자의 직무 적합성 평가를 효과적으로 수행하고 있다.
합격 자기소개서를 보고 베끼는 것만으로는 채용 시장에서 좋은 결과를 얻기 어렵다. 합격 자기소개서는 단지 참고 자료로 삼아야 한다. ‘표절 의심’으로 분류된 자기소개서가 무조건 다 ‘불합격’ 처리되는 것은 아니지만, 안전하게 합격하기 위해 서류를 접수하기 전 지원자들은 자기소개서를 작성한 뒤 맞춤법 검사를 하는 것은 물론, 서류 전형에서 불합격 판정을 받을까 봐 자기소개서 유사도를 검사해보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