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 대기업 VIP 의전팀의 채용을 대행할 때였다. 기업 이미지가 좋아서인지 지원자가 많이 몰렸다. 서류 전형 심사 후 탈락자들의 문의가 빗발쳤는데, 그중 한 여대생이 면접만이라도 한 번 볼 기회를 달라며 졸랐다. 이미 탈락한 사람을 어쩌랴 싶어 달랬지만, 너무나 간곡히 부탁해서 입사지원서를 다시 살펴봤다. 나는 그녀가 탈락한 이유를 단번에 알아차렸다. 내용을 볼 것도 없이 이력서 양식이 볼품없었다.
당시는 자유 양식이었는데, 그녀는 문구점에서 파는 전형적 이력서 양식을 그대로 썼던 거다. 나는 이력서 양식을 좀 더 세련되게 다듬어 인사 담당자에 게 다시 전달했다. 인사 담당자는 그녀의 이력서를 이미 받아본 적 있음에도 이전 이력서와 구분하지 못하고 그녀를 면접시험에서 보고 싶다고 했다. 그걸로 그녀는 원하던 대기업에 입사했다.
이 책 출간을 기준으로 벌써 16년째 근무 중이다. 당신에게 이력서는 어떤 의미인가. 이력서는 취업의 당락을 결정할 뿐 아니라 경력을 장기적으로 관리하고 구축하는 데 가장 기본이 되는 문서다. 그런데 취업 현장에 있는 전문가들 중에서조차 ‘이력서 한 장 정도야…….’라며 별것 아닌 듯 취급하는 사람이 있다. 이력서는 문서 특성상 어느 정도의 작성 요령이 필요한데, 이런 기술적인 부분을 잔재주라고 폄하하는 것이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길 바란다. 이력서는 당신보다 먼저 기업과 만나는 존재다. 당신에 대한 첫인상을 좌우하는 만큼 반드시 긍정적인 인상을 심어줘야 한다. 정성껏 작성해야 하는 게 당연하다.
별것 아닌(?) 이력서가 가져다준 특별한 경험과 깨달음
젊은 날의 나는 기업들의 채용 대행 업무를 맡아 입사지원자들의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손봐주는 상담을 무료로 해주곤 했다. 그 덕분에 보통 사람들이 보기에는 별것 아닌 것 같은 작은 서류인 입사지원서 작성법에 대한 이야기 하나만으로 책 한 권을 쓸 수 있었다. 또 그것을 초석 삼아 강의를 시작할 수 있었고, 기업 대표가 될 수 있었으며, 대학교수도 될 수 있었다. 그리고 거창하게 들리겠지만 인생의 깨달음까지 얻었다.
당시 나보다 더 오랫동안 일해온 전문가는 많았다. 하지만 그들 중 일부는 일에 대한 불만에 가득 차 있었다.
“이따위 재미없고 똑같은 이력서나 매일 쳐다봐야 하다니, 지겨워 죽겠군!” 하며 불평하곤 했다.
나는 그런 불만은 없었다. 구직자 입장에 많이 처해봤기 때문이다. 다만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젊은 날의 나와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좋은 조건을 갖춘 똑똑한 사람들이, 그러니까 내가 그토록 꿈꾸던 스펙을 가진 입사 지원자들이 왜 이다지도 입사지원서를 제대로 작성하지 못하는지가 말이다.
그런 의문을 품은 채 입사지원하는 이들에게 조언을 하나씩 해주기 시작했다. 입사 지원과 관련해 각자에게 어떤 문제가 있는지도 짚어줬다. 한 번도 그런 회신을 받아보지 못한 지원자들은 내게 고마움을 표시했고, 거기서 즐거움을 느낀 나는 더욱 신이 나서 회신 내용을 늘렸다.
그러다 보니 수정·보완했으면 하는 조언 내용만 무려 100가지가 될 정도로 답이 길어졌다. 이메일로 읽기에는 내용이 너무 많았다. 이래서는 제대로 읽어보지도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내가 만든 취업사이트 ‘파워잡’의 콘텐츠 게시판에도 내용을 올리고, 한 포털 사이트에 이력서 전문 카페도 개설해 정보를 전달했다. 급기야 보다 많은 사람이 읽을 수 있도록 《취업·경력 관리 노하우》라는 책까지 출간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내가 만든 취업 사이트는 조직 내부 문제로 비록 사라졌지만, 포털 사이트에 개설한 카페는 20여만 명의 회원이 가입해 연간 억대에 가까운 매출을 올렸다. 하지만 불행히도 그 카페는 내 소유가 아니었다. 내가 카페를 개설하도록 하고 콘텐츠도 제공했지만, 내 밑에서 카페를 관리하던 직원에게 한 푼도 받지 않고 넘겨줬다. 그의 수고 덕분에 카페가 더 발전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그 카페를 통해 내 책 한 권조차 맘껏 홍보할 수 없게 된 상황이 아쉽기는 하지만, 열심히 노력하고 일한 덕분에 취업·진로 전문가로서 입지를 굳힐 수 있게 된 것으로 자족한다. 게다가 이제는 영감을 불어넣어주는 이 시대 청춘의 멘토가 되었다는 평까지 듣게 되지 않았는가!
결과적으로 나는 남들이 사소하다고 여기는 이력서 작성 업무를 충실히 수행하며 콘텐츠를 늘린 덕분에 전문가로 도약할 수 있었을 뿐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인격적으로도 성장할 수 있었다. 이제는 ‘내 삶의 에너지를 우리 사회의 가치를 더 높이는 데 쓰겠다!’라는 사명까지 가지게 됐다.
이처럼 아주 작고 사소해 보이는 업무조차 끈기를 갖고 깊이 파고들면 그 이상의 배움과 가치를 얻을 수 있다. 어느 분야든 마찬가지다.
그러니 청춘들이여! 혹 지금 사소한 일을 하고 있다며 불평, 불만을 쏟아내고 있지는 않은지, 그러기에 앞서 하루하루를 의미 있게 보내고 있는지 스스로를 되돌아보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