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1년 운전병으로 무사히 군복무를 마치고 집에 오니 복학이 어려울 정도로 가세가 기울어 있었다. 그야말로 뭐든지 해야 등록금을 마련해 학교부터 마쳐야 했기에, 하루하루 일자리가 간절했다. 그 당시는 마트, 편의점이 없던 시절이라 수퍼마켓이 유일한 대형 유통수단이었다.
어느날 동네에서 가장 큰 대기업이 운영하는 수퍼마켓에 무작정 찾아갔는데, 갓 전역한 청년이라 그런지 흔쾌히 일자리를 얻어 바로 다음날부터 알바를 시작했다. 한 달 정도는 매장청소부터, 진열보충, 창고정리를 하면서 매장의 기본을 배웠다.
두 달째부터는 4대의 배달용 오토바이로 배달을 나가기 위해 틈틈이 선배들에게 오토바이를 배웠다. 비바람이 불어도 배달을 나갔고, 수금한 돈은 꼼꼼하게 정리해 경리 누나에게 전달했다. 석 달이 되자 지각 한 번 없이 성실하게 일하는 모습을 지켜 본 점장님이 단독 임무를 주셨다.
그 매장은 대형마켓이라 사업장에 급식자재를 납품했는데 1톤 트럭으로 배송을 병행해 나갔다. 그러는 사이 예비역 알바생 3명이 더 합류해 총 4명이 서로 돕고 격려하며 정말 힘든줄 모르고 재미있게 일했다. 이때 팀워크가 뭔지, 사람이 맞아야 함께 일한다는 걸 경영학 교과서 밖에서 배웠다.
유통매장은 준비와 마감 특성상 조기출근 지연퇴근은 기본이다. 오픈이 10시면 9시 출근, 클로징이 8시면 9시 퇴근했다. 눈·비오는 날 오토바이 배달이 제일 위험했고, 맥주와 쌀이 들어오는 날 이걸 지하매장까지 옮기는 일이 가장 힘들었다. 그렇게 6개월 정도를 일하니 등록금을 내고도 남을만한 돈이 모여 복학을 위해 그만두겠다고 말씀드리니 마지막 근무날 선배들이 회식을 열어줬고 점장님은 고생했다며 그 당시 20만원을 보너스로 넣어 학업에 보태라며 내게 건네셨고, 나를 친동생처럼 챙겨주던 경리 누나는 눈물까지 보였다.
성인이 되어 처음으로 힘들게 일해 돈을 벌었다는 기쁨과 끝까지 임무를 완수해 냈다는 성취감, 술 한잔 따라주며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는 선배들의 마음에 취기까지 더해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젖어갔다. 그렇게 집으로 향하는 길, 갑자기 폭우가 쏟아졌다. 우산도 없이 비를 쫄딱맞고 버스정류장 앞에 서 있는데 쏟아지는 빗줄기와 6개월간 고생했던 순간들, 앞으로 살아가야할 막막함이 섞이면서 묘한 감정이 교차하는 순간 레코드방에서 기가막힌 색소폰 연주곡이 흘러나왔다.
그 당시 감정을 그대로 표현하자면 마치 온몸이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들어가서 이 음악이 뭐냐고 물으니 빌 위더스가 노래하고, 그로버워싱턴 주니어가 연주한 그 유명한 ‘Just the two of us'였다. 종종 라디오에서 저 곡이 나오면 그때의 풋풋하고 아름다운 추억이 떠오르고 지금도 어디가든 알바생을 마주치면 그들의 수고를 일찍 경험했기에 수고한다는 말한마디 건넨다. 그때 내가 처음으로 벌어 구입했던 추억의 CD는 아직도 내 차에 소중히 보관되어 있다.